히브리서 5∼7장 | 김창기목사 | 2021-12-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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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7장 2021년 12월 15일 수요일 ◉ 히브리서 5장 ◍ 히브리서 저자는 먼저 대제사장의 자격 조건 두가지를 말한다. 첫째,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택함받아 사람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는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하며, 연약하여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도 연약하기에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1-3). 둘째, 대제사장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아야 한다.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아론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4). ◍ 이런 자격조건들은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의 자격요건과도 유사하다고 본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과 공감대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지도자라면 우리는 성도들과 얼마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지,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진정으로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 히브리서 저자는 5-10에서 예수님께서는 1-4에서 언급한 대제사장의 자격을 충분히 충족시키시는 분이심을 보인다.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된 대제사장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한다(5-6, 10). 시편 2:9를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자임을 증언하며, 또한 시편 110:4를 인용하여 예수님은 인간적인 아론의 계열이 아니라 영원한 멜기세덱의 계역을 따르는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한다. ◍ 멜기세덱은 창 14:18-20에만 단 한번 언급되는 인물이다. 멜기세덱은 시작도 끝도 모르는 존재로서 인간의 계열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나타낸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와같이 예수님은 바로 그 멜기세덱의 계열에서 오셨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이심이 틀림이 없음을 증거한다. ◍ 둘째로, 예수님은 인간과 공감하시는 분이심을 증거한다(7-9). 예수님은 육체로 계셨고,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는 기도를 드렸던 분이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인간과 같은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과 얼마나 많이 공감하고 계신지를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응답받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사람을 위하여 고난받으시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셔서 온전하게 되셨다. 이런 모습은 결국 예수님께서 사람과 얼마나 깊은 공감을 가지셨는지를 보여주신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과 깊은 공감을 가지셨기에 대제사장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신 분이심을 히브리서 저자는 증거한다. ◍ 8절에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는 말씀은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이다. 순종도 배우는 것인데 고난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순종을 잘 배우면 온전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이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우리에게 고난이 없다면 순종을 배울 수 없고 완전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고난이 주어지기에 점점 순종하게 되고 완전함으로 조금씩이나마 나아갈 수 있다. 그러하기에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5:10은 7:1로 연결된다. 5:11-6:20은 삽입이다. 그 내용은 성장하지 못함에 대한 경고(5:11-6:8)와 성장하라는 격려(6:9-20)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5:10에서 멜기세덱에 대하여 말했지만,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멜기세덱에 대하여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그들의 성장하지 못함을 경고한다. 그들은 때가 오래되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야 했는데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초보자가 되어 누군가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질책한다. 한마디로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젖이나 먹어야 할 갓난아기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마땅히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 즉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음에 대하여 질책한다(11-14). ◍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믿음의 경력은 오래됐는데, 성경의 관점으로 보면 아직 어린아이와 같이 젖이나 먹는 초보자들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마저도 다시 배워야 할 처지이다. 어떻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분량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장성한 자로 성장하기 위해 지각을 사용해야 한다. 지각은 이해력, 판단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신앙적인 성장을 위해서 우리의 사고력, 판단력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지적 활동, 논리적인 사고가 무용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내용을 보면 차곡차곡 논리적인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씩 하나씩 계속적으로 연결하여 최종적인 결론을 얻어내는 지적 과정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초보적인 상태에서는 복잡하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장성하기 위해서 지각을 사용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실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연단을 받는다는 뜻은 실습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지각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영적 장성함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받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훈련의 과정 속에서 아주 중요한 게 지각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해야 한다. 공부하다가 죽어도 순교다. 지각을 실습해야 장성한 분량에 도달할 수 있다. 지적 훈련을 통해서만 영적 장성함을 이룰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히브리서 6장 ◍ 5:11-6:8까지 영적 성장의 멈춤으로 인한 배교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고 6:9-20까지 말씀을 배워 영적 성장을 이루어 믿음과 소망으로 인내하며 나아가라고 격려한다. ◍ 히브리서 저자는 5:10에서 멜기세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멈추고 5:11-6:20까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7장에서 재개한다. 그 이유는 현재 말씀을 듣는 이들이 자신이 전하는 멜기세덱과 같은 어려운 말씀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말씀 배우기를 게을리하고 배우는데 더디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때가 오래 되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만을 반복해서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여전히 젖을 먹고 있는 어린 아기이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이다.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려야 한다. 즉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들 같은 도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을 할 수 있다(1-3). ◍ 우리도 말씀을 배우는데 게을러서는 안된다. 언제까지 말씀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으려 하는가?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말씀 배우는데 소홀히 한다면 결국 장성한 사람이 아니라 젖먹는 어린아기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날마다 말씀을 배우고 또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공부하다가 죽어도 순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씀 배우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뜻한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 지적 활동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 사고, 이해력, 판단력과 같은 지적 능력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그러한 지적 능력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한다. 성령님 역시 지적으로도 활동하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성령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도 가능하다. ◍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사람들은 다시 새롭게 회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4-6). ◍ 빛을 받았다는 의미는 세례를 받고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하늘의 은사를 멋본 것은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고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말씀 안에서 복음의 축복을 경험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도 유사하다. 주님을 부르며,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은(마 7:21-22) 분명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타락하여 다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타락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짓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을 말한다. 배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던 사람이 예수님을 대적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였지만 예수님을 팔아 넘긴 사람이다. 마태복음 13장의 씨뿌리는 비유를 생각해보면,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에는 분명히 싹이 났다. 하지만 그 씨들은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 바울은 데마가 그런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마음 아파한다(딤후 4:10). 오늘날도 소위 안티크리스천이라는 사람들이 자신은 한 때 예수님을 믿었다고 이야기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 어째서 그들은 배교의 길로 나아갔는가? 영적 성장이 멈추어 버렸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이 멈추어 있는 사람은 배교할 위험성이 크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배교할 위험이 높다. 우리는 영적 어린 아기로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인가? 날마다 성장하고 있는 사람인가? ◍ 히브리 저자는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고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저주를 받아 버림받고 불살라진다고 경고한다(7-8). 우리는 우리의 최종적인 열매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이 평가받는 것임을 늘 유념해야 한다. ◍ 히브리 저자는 이 글을 받는 수신자들에게 그들은 앞서 말한 그런 타락한 사람들이 아님을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구원에 속한 사람임을 확신한다. 그들은 배교의 위험성을 알아 부지런함으로 믿음, 소망, 오래참음으로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한다(9-12). ◍ 하나님의 약속을 오래 참으며 믿고 붙들면 결국 이루어진다(13-20).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는 것이 중요하다. 반드시 이루어짐에 대해 소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면 결국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다. ◉ 히브리서 7장 ◍ 5:10에서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시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빈 자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은 자이다. 그는 의의 왕, 살렘왕, 평강의 왕이다. 그는 시작도 끝이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처럼 항상 제사장으로 존재한다. 그는 레위의 족보에 들지 아니하면서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고 그를 위해 복을 빌었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경의를 표했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지파도 멜기세덱에게 경의를 표현해야 한다(1-10). ◍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제사장 직분이 바뀌는 것처럼 율법도 반드시 바뀌어져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육신에 속한 율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제사장이 되셨다.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다. 구약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 증거한다(시 110:4)(11-22). ◍ 아론계열의 제사장들은 죽음으로 항상 있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영원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합당하고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다(23-28). ◍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신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제사장이시다. 세상은 변해도 예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우리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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