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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8∼10장 김창기목사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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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810

20211216일 목요일

 

히브리서 8장 새언약의 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1-7장에서 언급한 유일하고 완전하신 대제사장으로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계신다. 8장부터는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 율법하의 대제사장들과는 구별되게 어떤 사역을 감당하시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일반 대제사장은 땅에서 섬기는 것과 대조적으로 예수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않으셔서 참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신다. 옛장막은 참장막의 모형일뿐이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유일하고 완전하신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의 모형일 뿐이다(1-2).

모형인 옛 제사 제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원형이신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함이 마땅하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면서도 여전히 섬기시는 분으로 계심을 깨닫게 된다. 높아지신 후에도 여전히 섬기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천국에 가서도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로 존재한다. 섬김으로 타인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것 그 자체를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사람은 마땅히 천국의 백성일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서도 대접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면 천국백성으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섬김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가장 귀한 모습임을 알아 이 땅에서부터 섬김을 훈련받아야 하겠다.

 

일반 대제사장이 예물과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예수께서도 예물과 제사를 드리시지만 예수께서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지는 않으신다. 그 예물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3-4).

 

옛 장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본을 따라 준비된 모형과 그림자이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그렇게 옛 언약을 따르는 대제사장들이다. 그러나 예수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신 분이시다. 즉 예수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다. 옛 언약으로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와 더불어 새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5-13).

옛언약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언약이다(이 언약은 시내산언약을 가리킨다, 19:5-6).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옛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셨다. 새언약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그들은 모두 나를 알게 되리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라라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법을 기록한 새언약이다(31:33-34). 옛언약은 낡아지고 없어져 가는 것이지만 새언약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새언약의 피를 마신 사람들이다(22:20, 고전 11:25). 하나님께서는 새언약의 피를 마신 사람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신다. 그 은혜를 우리가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일하고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도 완전하시다. 즉 예수님의 사역은 옛 장막이 아니라 참 장막에서 이루어졌다. 드려진 예물도 옛 예물이 아닌 새 예물인 자기 자신이시다. 그리고 사역의 방법도 옛 언약인 율법을 따른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을 따른 것이었다. 그 새 언약은 우리를 영원히 불쌍히 여기시고 영원히 죄를 사해주셔서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이시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그 새언약을 이루어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성찬식에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새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도 형횽할 수 없다. 쓸데 없는 자를 구속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깊이 감사하여 찬양하며 살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9장 완전한 죄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옛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다. 그 성소는 첫 장막이다. 그 첫 장막 안에 등잔대, , 진설병이 있다. 둘째 장막은 둘째 휘장 뒤에 지성소이다. 그 지성소안에 금향로와 언약궤가 있다. 언약궤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 언약의 돌판들,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다. 이 첫 장막에는 제사장들이 들어가 옛 예식으로 섬긴다. 둘째 장막에는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서 피제사를 드린다(1-10).

이러한 장막들에서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온전하게 할 수 없다. 옛 언약하에서 옛 장막들에서 드리는 에물과 제사는 온전케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지은 옛 장막이 아니라 더 크고 온전한 새 장막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어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로 육체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지 못하게 하겠는가? 예수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 첫 언약 때 범한 죄에서 우리를 속량하시려고 죽으셔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약속을 얻게 하신다(11-15).

새 장막에서의 새로운 희생제물만이 우리를 온전히 속량하시고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신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있지 살아있으면 효력이 없다(16-17).

새로운 희생제물은 죽어야만 효력이 있다.

 

옛 언약도 피로 세웠다. 즉 모세가 율법의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온 백성과 장막의 모든 그릇에 뿌린다. 그리고 모든 물건은 피로써 정결케 된다.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도 없다(18-22).

옛 언약에서의 제물도 죽어서 피를 흘려야만 효력이 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은 땅에 있는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 제물이 되시는바 그리스도는 참장막인 하늘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처럼 해마다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신다. 그는 단번에 제물로 드려져서 죄를 없이 하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 사람은 한번 죽고 그 후에 심판을 받는데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려지시고 그 후에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실고 두번째로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23-28).

새 장막에서의 새로운 희생제물인 예수께서 죽으셔서 흘린 피로 인해 온전한 죄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 예수는 그것을 위해 죽으셨고 세상 끝에 나타나신다.

 

예수님은 새언약 하에서 새장막, 참장막, 하늘장막에서 새로운 희생제물로서 단번에 드려져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온전히 사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나라, 구원, 영생을 주신다.

 

히브리서 10장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율법에 따른 제사는 참형상이 아니라 장차 올 좋은 일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하기에 온전하게 속죄할 수 없다. 이 제사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한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할 수 없다(1-4).

 

히브리기자는 시 40:6-8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희생제사는 동물의 희생제사을 대체하시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5-10).

예수의 희생제사는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는 영원한 제사이다(11-15). 히브리기자는 그 온전케 함에 대하여 성령께서 증언하신 말씀(31:33-34)으로 확증한다(16-17). 이제 히브리기자는 1장에서부터 주장한 내용의 결론으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다고 선언한다(18).

예수의 희생제사로 단번에 영원히 완전하게 죄를 사하셨기에 우리는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며 제사를 드려서도 안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해 화목제물, 속죄제물, 속건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기에 인간의 죄는 완전하게 사함을 받았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다. 인간은 구약의 그러한 율법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제사장들 중 예수님을 믿었던 이들이 다시 구약의 율법제사로 돌아가려 하고 있기에 히브리기자는 단호하게 권면하고 있다. 우리 삶에서 예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와 가치를 분명하게 깨닫고 믿고 죄사함에 대한 감사와 확신 속에서 천국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다.

 

19절부터 39절까지 다시 경고단락이 이어진다. 그리스도에 대한 불충성의 위험을 경고하기에 앞서 먼저 그 근거를 제시한다. 즉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휘장을 여시고 큰 대제사장이 되시기에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19-22). 또한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다(23). 그리고 지체들을 돌아보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 즉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일을 격려할 수 있다(24). 이렇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25) 이에 대하여 이어지는 단락에서 엄중히 경고한다.

 

그런데 이러한 권면(“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도 짐짓 죄를 범한다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심판 즉 명령한 불만 남아 있을 것이다(26-27). 그렇다면 그 짐짓 죄란 무엇인가? 29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짐짓 죄란 언약의 피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죄이다. 즉 예수님의 보혈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죄이다. 예수님의 보혈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 다른 종교적 제사나 제도나 인간의 선행에 의지하려는 죄를 말한다(28-31).

 

히브리기자는 이제 배교하는 자가 아니라 끝까지 충성된 자로 남는 자들을 위해 격려를 한다. 지금까지 그들이 예수님을 믿은 후 받았던 큰 고난과 박해를 잘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고 격려한다. 고난중에 도리어 고난당하는 자를 동정하고 고난을 도리어 기쁘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소유 즉 영생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이라고 격려한다. 그러므로 그 인내와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러한 인내로 큰 상을 얻게 될 것이라 격려한다(32-35).

견디기 힘든 현실을 만날 때 과거에 고난을 이겨냈던 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 큰 고난을 이겨내게 하셨는데 지금의 고난도 능히 이겨내게 하시리라.

 

히브리 기자는 우리에게 인내와 믿음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인내와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약속하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36-39).

예수님은 속히 오실 것이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라 오직 영혼 구원에 이르게 되는 믿음을 가진 자이다.

 

예수 십자가 보혈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며 어떤 고난과 핍박과 역경 속에서도 인내와 믿음으로 나아가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으로 인내하며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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