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 홈 >
  • 예배와 말씀 >
  • 새벽설교
새벽설교
히브리서 12∼13장 김창기목사 2021-12-18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03

http://ysin.onmam.com/bbs/bbsView/78/6007056

히브리서 1213

20211218일 토요일

히브리서 12장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를 기쁨으로 받으라

히브리서 저자는 10:36,39에서 인내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권면한 후, 11장에서 인내하는 믿음을 가진 선진들의 모범을 보여준다. 이제 12장에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11장에서 언급했던 선진들의 모범을 따라 인내로서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한다(1). 그러나 선진들의 모범은 완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인내하는 믿음의 완전한 모범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끄러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준 죄인들까지도 인내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므로, 수신자들도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라고 권면한다(2-3).

 

저자는 수신자들의 고난에 대한 현재 태도에 대하여 질책한다. 즉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고난 중에 꼭 기억할 말씀을 잊어버리고 있다고 질책한다(4-5a). 기억해야 할 말씀이란 고난을 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요 아들이심을 증거해준다는 말씀이다(5b-6). 저자는 그 의미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즉 고난은 아들됨의 증거이기에 아들로서(7-8) 마땅히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권면한다(9). 그리고 고난이 주는 유익함을 설명하는데 그 유익함이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과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10-11). 저자는 이러한 설명에 이어 다시 한번 권면한다. 피곤하여 지친 수신자들에게 다시 일어나서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여 완주할 것을 권면한다(12-13).

 

히브리서 저자는 주제를 전환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인 화평함과 거룩함을 잃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는 계속 언급될 배교와 관련이 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잃는 것은 곧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이요, 공동체가 하나님을 떠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14). 저자는 배교에 이르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에 대하여 경고한다. 구성원들의 부주의함으로 배교에 이를 수 있기에 공동체가 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며, 쓴 뿌리 즉 에서와 같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자 즉 영적으로 음행하는 자와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영생을 포기하는 망령된 자들이 공동체를 배교에 이르게 하지 못하도록 살피라고 권면한다(15-16). 그러한 쓴 뿌리는 다시 회개할 수 없다고 엄중하게 경고한다(17).

 

저자는 앞에서의 다른 권면 단락들에서처럼 경고 뒤에 격려를 한다. 시내산과 시온산을 대조시킴으로 옛언약 하에 있던 예배자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어렵고 두려웠지만(18-21), 새언약 하에서 생명의 표지가 되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무제한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수신자들을 격려한다(22-24). 저자는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것을 권면한다(25-29).

 

설령 잘못으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지라도 그 징계는 사랑하시기에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말고 그 징계를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에서처럼 일시적 세상 즐거움을 위해 하나님을 배신하거나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된다.

 

 

 

히브리서 13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라

저자는 앞장 특히, 11, 12장에서 믿음과 인내에 대한 것을 다루었다. 이제 13장은 사랑의 주제로 그 시작을 열고 있다. 형제사랑은 고대사회의 주요 덕목이었을 뿐 아니라 신약 전반(바울, 베드로, 요한)에 걸쳐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내용이다. 독자들이 만약 핍박이나 배교의 위험 등으로 믿음이 약해졌고 그 결과로 공동체 상호간의 관계도 약화되었다면, 저자가 결론부분에서 형제 사랑을 강조하면서 과거의 모범적인 자세(10:32-34)를 상기시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단락의 주제들은 체계성이 없는 조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네 부분이 각각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1,2), 갇힌 자와 어려움 당한 자를 돌보는 것(3), 결혼을 중시하는 것과 부정한 짓을 피하는 것(4), 탐심을 피하는 것과 자족할 줄 아는 것(5,6).

저자는 이미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했고(10:24), 다시 선행과 나눔의 행위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고 말한다(6).

형제 사랑 권면에 뒤이어 그 구체적인 예들이 나온다. 먼저, 손님 대접은 유대인, 이방인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교회 감독은 이 점에서 뛰어나야 한다(딤전 3:2, 1:8). 다음으로, 성도들에 대한 대접은 더욱 권장되었다. 초대교회 때에 복음전파를 위한 순회 사역은 물론, 박해로 핍박받는 형제들을 위한 접대는 절대적이었으며, 이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셋째로,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는 명령은 분명 형제사랑에 속한다. 음행은 법률로 금한 결혼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성적 부정행위를 말하며 간음은 쌍방이 결혼 서약에 충실하지 못한 것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범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참된 예배를 위해 필수적인 거룩함은 이러한 범죄들로 인해 더럽혀진다.

 

본 장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 세 번 언급된다. 17, 24절은 현재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예수께 들은 복음을 전하고(2:3) 또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가르쳤던(6:1) 그러나 이제는 사망한 지도자들이다. 공동체는 사망한 지도자들이 선포해준 이 불변의 진리를 계속적으로 붙잡고 그들처럼 믿음에서 승리해야 하며 다른 교훈들에 끌려서는 안되는 것이다(7-9).

 

저자는 십자가가 없는 편안한 영문 안이 아니라 멸시와 수치가 있는 영문 밖으로 기꺼이 나아가자고 권면한다. 이것은 영문밖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이 문맥에서 영문은 예루살렘으로써 유대교와 그 규례를 말한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과 그 안의 모든 것은 거룩한 것이고 영문 밖의 모든 것은 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었다. 한 때 거룩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을 다 버리고 이제는 능욕의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권면은 적대적인 사회에서 예수께 대한 믿음과 헌신이 약해져 가는 한편 과거 유대적 유산에 끌리고 있었을 유대그리스도인들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들의 눈에 안전해 보였을 지상의 제도는 진동할 것들’(12:27)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11:10)에 들어가기 위해 사라질 땅의 도성을 떠나야 한다. 하늘 도성은 아직 이르지 않았지만 이미 믿음으로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동물 제사는 그리스도의 제사로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감사제(7:12, 화목제의 한 형태)는 여전히 필요하다. 예수의 온전한 제사에 대한 감사를 항상 드려야 한다. 성도가 동물제사를 대신해서 드릴 두 번째 제사는 선행이다. 사랑(형제의 필요에 반응)과 선행(실제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함)은 이미 10:24에서 권한 바 있다. 이는 바울이 로마교인들 에게 그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12:1)한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10-16).

기독교는 철저하게 제의적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것에 근거를 둔다. 그래서 그의 백성들이 예배와 삶으로 찬미를 드리고, 친절과 물질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온전한 제사(예배)가 된다.

 

본 단락은 교리문답적인 교훈 단락들의 하나이다. 7절은 과거의 지도자들에 대한 회상을, 본 절은 현재의 지도자들에 대한 순종을 촉구한다.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거듭된 언급은 공동체 내의 일부에 긴장이 있음을 시사한다. 지도자들은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자들이다. 특히 옛 지도자들을 통해 전파된 말씀이(7) 왜곡되는 위험(9)에 맞서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즐거움으로 일하고 근심으로 행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17-19).

저자가 공동체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은 한편으로 공동체가 아직 배교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시사하며 자신이 공동체에 대해 어떤 지도적 책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편지의 많은 부분에서 나타나는 준엄한 훈계적 성격은 적대감이나 독자들을 깎아내리고자 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그의 진정한 사랑에서 발로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중심은 기도요청을 통해 드러난다.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들의 기도를 바랄 뿐 아니라 속히 그들에게 돌아가기를 바랐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수신자들로 하여금 온전케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20-21).

 

저자는 자신의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고 호소한다. 지금까지 옛 제도의 무능함을 설명하고 배교의 비극적인 위험을 준엄하게 경고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목표는 그들을 격려하고 강화시키는 것이었지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지도자들을 언급하며 그들과 그리고 모든 가정 교회 공동체에게 안부를 부탁한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이란 문자적으로 이달리야 출신의 사람이다. 따라서 이달리야 밖에서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쓰는 것도 가능하고, 이달리야 안에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히브리서는 짧은 축언(25)으로 끝이 난다(22-25).

 

저자는 12:28에서 예배란 예수께서 이루신 새언약의 축복에 반응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정의했다. 그리고 13:1-21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상술한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공적 예배뿐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는 확장된 예배이다. 우리는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베드로전서 1∼5장 운영자 2021.12.20 0 308
다음글 히브리서 11장 신앙의 선배들보다 나아야 할 우리의 믿음과 순종과 인내 운영자 2021.12.17 0 207